

[영암=미디어전남]박선옥 기자=목숨을 건 화마와의 싸움으로 남성들의 일터로 알려져 왔던 ‘소방관’, 이 험난한 직업에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한 여성이 있다.
그 주인공은 호남 최초의 소방서장으로 취임한 장경숙 소방정이다.
그는 1978년 입사시험과 1999년 지방소방위시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으며 매사에 꼼꼼함은 기본이며 성실하다는 주변의 호평도 자자하다. 그를 만나 40여 년간 호남 소방사를 새로 쓴 배경에 대해 들어본다. /편집자 주
▲최초여성간부, 최초 여성센터장 등 수식어가 따라다니는데.
1978년 여성소방공무원 공채 2기로 들어와서 일을 시작했다. 전남에서 여성공채로 들어온 게 제가 처음이라서 그런다. 연수가 오래돼 최초라는 말이 따라오는 것이다.
당시 공채로 여성 6명이 선발돼 배치를 받았지만 소방일이라는 게 여성이 하기 힘든 직업인지라 지금은 다 퇴직했고 저만 홀로 남아있다.
첫 부임지는 목포소방서였다. 그때만 해도 여성이 현장을 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행정요원으로 근무했었다. 소방사, 소방교, 소방장을 거쳐서 소방위란 간부가 됐다.
소방위 승진시험에 합격해서 그때부터 행정요원에서 파출소장을 하면서 현장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그 뒤 소방경, 소방령, 현재인 소방정으로 영암소방서에 첫 부임을 받아 소장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소방간부 전 단계인 소방사·교·장까지는 심사를 통해 승진했기 때문에 여성이 서열에서 제외되기 일쑤였지만 소방위부터는 실력대로 승진 시험을 통해 한 단계씩 올라갈 수 있었다. 이 단계부터 ‘멈추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공부했고 여성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선배로서 본보기가 돼야겠다는 일념이 있었다.
▲40여 년간 어떤 각오로 근무에 임했는지.
소방이란 직업이 여성이 감당하기에 육체적으로 힘든 분야다. 경찰만 봐도 여성들이 하는 분야가 정해져 있지만 소방은 현장업무가 주 업무라 여성들이 버티기 힘들다.
그렇지만 저를 시작으로 여성소방공무원들이 매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이제껏 남녀구분이 있어 남성만 고집하고 있던 소방에 많은 여성들이 문을 두드려 현재 14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비록 전남소방공무원의 6% 수준이어서 여성공무원의 활동이 눈에 띌 수밖에 없어 남성보다 배는 일을 해야 잘한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남성과 같이 현장활동을 하려면 체력이 강인해야 하며 또한 위급상황에서 판단력, 담대함이 보태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운동으로 건강관리가 철저해야 하고 동료와도 굳건한 믿음으로 가족같이 지내야 한다.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퇴직한 남편과 32세와 28세의 두 아들이 있다. 아들들은 아직 미혼이며 서울에서 생활한다. 어릴 때 항상 곁에서 챙겨주지 못해 엄마로서의 역할이 항상 미안할 뿐이다. 큰아들은 4살 때 까지 친정엄마가 키워줬지만 둘째는 생후 6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맡겼다.
출근하기 전에 아이가 하루 동안 먹고 사용할 분유와 물품을 차에 가득 싣고 어린이집에 태워다 주고 퇴근 후 데려왔다. 그 이유에서 인지 첫째는 저희 부부를 닮아 차분한 성격인 반면 둘째는 산만해 힘들었지만 대학 입학 후 많이 좋아졌다.
당시 휴직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보통 두달 정도 쉬고 복귀하는데 저는 한 달만 쉬고 복귀해야 했다. 당시 경리업무를 맡고 있어 소방서에서 ‘직원들 급여를 지급해야 하니 나와 주면 고맙겠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그때 어려웠던 시절이 떠올라 후배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게 있다.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2~3년간 충분히 휴직기간을 가져 함께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다.
남편과의 갈등도 많았다. 한 예로 1999년도 영암파출서장을 역임할 당시 직원들 생일을 직접챙겼었다. 꽃다발과 케이크를 준비했다. 이렇게 직원들 생일은 빼놓지 않고 챙겼지만 정작 남편의 생일은 챙기지 못했다. 남편이 “자네는 너무한 것 아닌가. 직원들은 그렇게 챙기면서 남편 생일은 잊고 산다”고 했다.
그만큼 직장에 많은 신경을 쓰다 보니 가정에 소홀했었다. 남편도 많이 챙겨주지 못했다. 남편은 퇴직해서 쉬고 있는데 저는 항상 “거성이 아빠 2년 2개월 남았네. 그때는 극진히잘 모셔 드릴 테니 잘 참고 외조를 잘해주소”라는 부탁을 한다.
제가 퇴직하게 되면 남편과 6개월 정도 여행을 갈 예정이다. 그때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사랑얘기를 꾸며볼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현재 가장 이슈화 되고 있는게 소방공무원이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전 정부와는 달리 소방에 관심을 가지고 격려도 많이 해주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다.
제일먼저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 돼서 모두가 공평하게 모든 문제를 서로 격차 없이 지원받을 수 있기 바란다. 모든 소방관들이 바라고 있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니 소방관 제복은 나의 운명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집 전체가 소실될 정도로 불이나 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때 알았다. 지금도 진압 작업을 펼칠 때 불을 끄기 위해 살신성인했던 그 때의 소방관들이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저와 함께 해준 동료 소방관 여러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